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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김미숙(재경 일동중고 동문회 사무차장)

“‘고향’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다정함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라는 정감을 강하게 주는 말이면서도, 정작‘이것이 고향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운 단어이다. 고향은 나의 과거가 있는 곳이며, 정이 든 곳이며, 일정한 형태로 내게 형성된 하나의 세계이다. 고향은 공간이며 시간이며 마음(人間)이라는 세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로 굳어진 복합된 심성이다.” (퍼온글)

고향을 떠나 타지 생활 30년. 내 머릿속 고향, 일동면 수입3리는 늘 한 가지 그림이다. 누런 황톳길, 먼지 날리는 신작로와 군용 지프, 푸른 제복의 군인들. 아침, 저녁으로 점호를 알리던 트럼펫 소리와 수탉이 회를 치는 새벽에 울리던 행진곡, 해거름엔 평화로운 곡조가 시골 동네를 휘감았다. 당시 민간 차량은 하루 한 대도 보기 힘들었지만, 푸른 천으로 덮인 군용 지프는 수시로 한길을 오갔다. 동네 어르신보다 더 많은 군인, 그들의 철모와 총, 수통과 훈련받는 모습들…. 고향과 그들은 그렇게 하나였다.

한창 바쁜 농번기에 그들의 손길은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때마다 군인들이 일을 거들었다. 농사일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막걸리다. 농사일하는 데 있어 힘의 원천 같은 것이었다. 고향 막걸리는 특히나 그 맛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농사일이 힘에 부칠 때도, 하루하루 삶이 고달플 때도 시름을 털어내려 들이켰던 막걸리……. 농사꾼에게 막걸리는 술 그 이상의 의미였다.

 
ⓒ포천시

동네 앞으로는 개울이 있어 여름엔 멱을 감고 겨울엔 썰매를 탔다. 날이 추워지면 군인들은 물길을 막아 스케이트장을 만들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웅덩이가 깊이를 알 수 없게 얼면, 아이들은 썰매를 타며 하루해가 가는 줄 몰랐고, 그것도 지치면 팽이치기를 하며 놀았다. 다들 썰매를 타는데, 검은색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도 있었다. 은색 스케이트 날이 코너를 돌 때 번쩍 빛을 내면 어찌나 멋지고, 근사하던지. 코너를 돌며 한쪽 팔은 등을 집고 한쪽 팔은 위아래로 내젓는 유연한 몸짓을 넋을 잃고 쳐다봤다. 그것은 아무리 앉아서 용을 써도 속도가 나지 않는 썰매를 타고 있는 내게 부러움과 시샘이었다.

겨울이 깊어지면 설이 찾아왔다. 곤궁하던 시절에도 설을 앞둔 동네는 부산스러웠다. 지짐을 부치고 쌀을 빻고….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네에서 제일 너른 회관 앞마당에 자리 잡은 뻥튀기 아저씨였다. 길고 검은 망을 묶은 기계에 옥수수, 쌀, 가래떡을 넣고 돌리면, 개구쟁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누런 코를 훌쩍거리며 기다렸다. 긴 기다림 후, ‘뻥’소리와 함께 하얗게 쏟아져 나온 뻥튀기와 구름처럼 피어나던 김 사이로 쏟아지는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 때 묻은 분유통에 담긴 말라버린 옥수수와 쌀, 가래떡을 튀긴 뻥튀기는 겨우내 아이들의 간식거리로 최고였다. 복실이, 쫑이도 잠든 긴 겨울밤, 먹고 나서 돌아서면 배고프던 그때, 뻥튀기는 더 없는 먹을거리였다. 너무 먹어 입이 까칠해지면 엄마는 김치 구덩이 속에 묻어 둔 무를 꺼내 깎아 주셨다. 무를 먹고 나서 트림을 하지 않으면 인삼 먹은 거나 진배없다고 하셨다.


ⓒ포천시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였던 회관 앞마당에선 계집아이들이 고무줄놀이, 땅따먹기하고 사내아이들은 자치기, 사방치기를 하며 놀았다. 넓은 마당에서 명절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윷놀이, 널뛰기는 물론 동네잔치도 벌였다. 한복을 입은 명창들의 판소리가 흥겹던 동네 어르신의 환갑도 거기서 했고, 일 년에 두어 번 명절에 쓸 돼지를 잡을 때도, 처음으로 본 영화 ‘노란샤스의 사나이’도 그 마당에서였다. 회관 마당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동네 사람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고향을 찾은 우리를 여전히 살갑게 반겨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그들의 패인 주름에서 고달팠던 인고의 세월이 느껴진다. 어떤 분은 떠나고 안 계시기도 한데, 그분들의 부고를 듣는 것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과 내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고향 사람이고, 고향 동네 어딘가에 푸른 햇살 넘실대듯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리라.

고향, 그것은 치열한 경쟁 속에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여유처럼, 떠올리면 아늑하고 푸근한 엄마 품 같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이리라.

기사등록 : 2019-08-08 조회수 :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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