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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뫼의 유산

시민기자 서상경

꽃뫼는 화산(花山)의 순우리말이다. 1659년 조선 효종 때 이곳의 화산서원이 '꽃뫼'라는 지명을 따서 화산이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한자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화산서원에서 수학하던 선비들이 화봉산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 산 위에서 횃불을 피워 위험을 알렸기에 화봉산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화봉산은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이다. 해발 182m에 불과하지만 산으로 느껴지는 위용이 있다. 한북정맥으로 둘러싸인 포천분지에 청성산, 태봉산과 함께 나란히 솟아오른 세 개의 봉우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화봉산 정상  ⓒ 시민기자 서상경

평야에 부채를 펼친 형상의 화봉산은 옛 사람들이 보기에 명당으로서의 신비함이 있었나 보다. 조선시대 명신인 이항복을 모시는 서원을 이곳에 건립하였고 1825년 화산서원을 중수하면서 화산서원 중수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포천현의 동쪽 옥금동에 경치 좋은 명승지가 있어서 선생이 즐기며 노니셨던 그곳에 맞추어 포천현의 사람들이 최초로 선생의 서원 터를 골라 주춧돌을 세우고 이윽고 화산의 아래 석포의 위에 이르러 선생의 유허로 삼았다~”

화산서원은 처음에 가산면 옥금동에 세웠다가 화산 아래로 옮겼다고 한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포천 유림에 의해 1971년에 복원되었다. 선생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명나라의 구원을 청하러 떠났고 광해군 때는 인목대비 폐위를 반대하다가 북청으로 유배를 가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포천은 선생의 향리이기 때문에 선생이 끼친 풍속과 여운이 많이 남아 있다.

 
▲ 화선서원  ⓒ 시민기자 서상경

화산서원에서 360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300m 거리에 기아자동차서비스가 있고 왼쪽에 화봉산 등산로 입구가 있다. 정상까지 가장 선명하고 빠른 길이다. 화산서원 옆의 화봉사에서 뒤편 산길로 올라갈 수도 있으나 산길이 선명하지 않다.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은 제법 나무들이 울창하다. 사람들이 자주 오르내리는 산길은 아니지만 인근의 주민들은 운동 삼아 자주 찾는 모양이다. 정상 부근에는 각종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고 화봉산악회에서 세운 정상표석도 있다.
 

▲ 소나무숲  ⓒ 시민기자 서상경


▲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  ⓒ 시민기자 서상경

정상에 닿으니 낮은 산이지만 가산면의 들녘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수원산에서 운악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의 굵은 선들이 뚜렷하고 북쪽으로 곧게 뻗은 포천-구리 고속도로가 발아래 펼쳐져 있다. 왼쪽으로는 송우리와 왕방산 줄기가 포천시를 감싸 안고 있다.

포천에 거주하던 옛 선비들도 이곳의 풍광을 즐겨 찾았던 것 같다. 화봉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병풍바위는 과거 한말 위정척사운동의 대표격인 최익현 선생이 지역 학자인 유기일과 만나 회동하였다는 곳이다. 바위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글씨는 다음과 같다.

"대명천지 영력일월 조요학공 경승백사 계사춘 최익현위 유기일서
(大明天地 永曆日月 祖堯學孔 敬勝百邪 癸巳春 崔益鉉爲 柳基一書)
요와 순의 도를 이어받아 서술하여 밝히고 공자의 학문과 도를 배우나니
공격은 모든 사악을 이기노라 계사년(1893년 고종 30) 봄에 최익현이 유기일을 위하여 쓰다."

그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도 새겨져 있다.

"이승응 이유선 솔 이규용 나유영 안항선 조성옥 위각솔표석이십육자 유기일지
(李承膺 李裕譱 率 李圭容 羅有英 安恒善 趙性玉 爲刻率表石二十六字 柳基一志)
이승응, 이유선이 이규용, 나유영, 안항선, 조성옥을 인솔하고 화표석에 26자를 새겼고 유기일이 기록하다."
 


▲ 화봉산 암각문  ⓒ 시민기자 서상경

평양화표(平壤華表)라는 굵은 글씨 - 평양은 요의 도읍지이고 화표는 요가 위정자에 대하여 민원을 표시하도록 길가에 세웠던 표목의 명칭이다. 즉 평양은 포천을 가리키고 화표는 표지를 뜻한다.


▲ 화봉산 암각문 – 평양화표  ⓒ 시민기자 서상경

화봉산 중턱 병풍바위 앞에는 이렇게 요약된 안내문이 서 있다. “예부터 영산인 화봉산 중턱에 있는 이 병풍바위는 위정척사운동의 표상 면암 최익현과 이 고장의 대학자 유기일이 자주 만나던 바위다. 이 바위에는 유기일의 시와 최익현의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서 태어난 면암은 74세에 항일의병운동을 일으켜 일본 경비대에 수감되었는데 신발 밑에 우리 흙을 집어넣어 일본 땅은 절대로 밟지 않겠다고 했으며, 일본이 주는 음식은 쌀 한 톨 먹지 않고 대마도에서 거룩한 죽음을 맞았다.”

화봉산의 정상 주변에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들이 즐비하다. 가산면 주민들은 이곳에 화봉산 내력을 알리는 비석을 건립했고 또한 화봉산의 암각문은 조선시대 서예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다. 꽃뫼의 유산으로 잘 간직할 일이다.

※ 포천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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