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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주 암각문을 찾아서
영하의 날씨가 오히려 반가운 역사탐방

시민기자 이화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북극 한파 속에 포천천도 꽁꽁 얼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 포천천으로 인해 접근할 수 없었던 섬바위 암각문과 백로주 암각문을 직접 볼 기회가 이번 아니면 없을 것을 알기에, 집 밖에도 나가기 싫은 추위를 무릅쓰고 거사리 백로주 마을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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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주 마을 입구  ⓒ시민기자 이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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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주 서암, 섬바위, 동암  ⓒ시민기자 이화준

백로주는 조선 시대 한양에서 출발하여 함경도의 경흥(慶興)을 잇는 주요 교통 도로에 위치한 데다가, 포천천의 맑은 물과 섬바위의 기묘한 형태가 절경을 이뤄 많은 묵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었다. 경기 관찰사 동강(東崗)이란 호를 쓰신 분이 선조 12년(1579) 큰 서돌바위에 새긴 글씨인데,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이백(李白)의 시 三山發落靑川外 (삼산발락청천외) 二水中分白鷺洲 (이수중분백로주) 자구에서 취한 것으로 백로주 지명 기원지암이 되었다. 또한 이곳은 포천의 명사인 양사언(楊士彦), 양만고(楊萬古), 조경(趙絅) 등을 비롯하여 송시열(宋時烈) 등이 찾아와 배를 타고 즐겨 놀던 곳이다.


▲서암 가는 길  ⓒ시민기자 이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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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 가는 길  ⓒ시민기자 이화준

포천천 제방을 따라 농수로 수문까지 이동했다. 마침 주민분이 있어 백로주 암각문 찾아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수로를 따라 서암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며, 포천천으로 툭 튀어나온 바위를 가리키며 무슨 형상이 보이냐고 물어본다. 암만 봐도 형상을 알 수 없기에 갸웃거리니, ‘기자님 올해 복 많이 받으라’고 돼지머리 형상을 알려줬다. 그러고 보니 영락없는 돼지머리였다. 일러준 수로를 따라 제방을 내려가 서암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 서암에 도착했다.

5▲서암 암각문 위치  ⓒ시민기자 이화준

마침 포천천이 얼어 있기에 포천천으로 나가 서암을 사진에 담아 보았다. 그리고 제일 먼저 백로주 암각문을 확인하러 가까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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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의 첫 번째 암각문  ⓒ시민기자 이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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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의 두 번째 암각문  ⓒ시민기자 이화준

서암 첫 번째 암각문의 규모는 82㎝×185㎝이며, 해서체로 “백로주(白鷺洲) 기묘추철원부사동강서(己卯秋鐵原府使東岡書)”라고 새겨져 있다. 백로주는 40㎝×45㎝의 크기로 크게 새겼고, 나머지 글자들은 15㎝×13㎝의 크기이다. 비바람에 마모가 많이 되어 백로주를 제외하고는 글자를 읽기가 어렵다. 문헌에는 ‘기묘년 가을 철원부사 동강이 썼다’고 나오는데, 동강이 누구인지는 관직도 철원부사인지, 경기 관찰사인지 명확하지 않다. 두 번째 암각문의 규모는 42㎝×105㎝이며, 글자 크기는 6㎝×6㎝이다. “산유백운주백로(山有白雲洲白鷺) 운수로거수로운(雲隨鷺去隨鷺雲) 산운주로상수처(山雲洲鷺相隨處) 아방한정공일군(我方閒情一群) 소주(素洲)”라고 새겨져 있으며, 시를 지은 소주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출처-디지털포천문화대전). 바위 상단 틈새에 시구가 적혀 있는데, 디지털포천문화대전에 소개된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아무리 보아도 시구가 3줄이고, 그나마 마지막에 읽을 수 있는 글자 ‘소주(素洲)’만 확인된다. 그리고 주변에도 여러 암각문이 보이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8▲서암 세 번째 암각문  ⓒ시민기자 이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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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 네 번째 암각문  ⓒ시민기자 이화준

추운 날씨 속에서도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서암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백로주 바위 위쪽으로도 암각문이 보인다. 그리고 제일 왼쪽으로도 이곳을 다녀간 사람의 이름인지 박승희, 박승익 등의 이름이 보인다. 이 암각문은 디지털포천문화대전에도 소개되지 않은 내용이라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75▲섬바위  ⓒ시민기자 이화준

이젠 얼어붙은 포천천을 지나 섬바위에 올라본다. 섬바위는 마치 코끼리가 웅크리고 앉은 듯한 모습이다. 섬바위 곳곳에도 암각문이 보이는데 비바람에 마모가 되어 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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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바위 후면에 새겨진 암각문  ⓒ시민기자 이화준 

한문으로 된 암각문도 있지만, 한글로 된 암각문도 보인다. 사람들은 바위에 이름을 새겨 장수와 불멸을 꾀하지만, 시간의 마모를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부질없는 짓일 뿐이다.

754▲섬바위 정면의 암각문  ⓒ시민기자 이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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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의 암각문  ⓒ시민기자 암각문

섬바위의 정면 상단에는 “평양북신(平陽北辰 - 태평스러운 요 임금 시대의 도읍지인 평양, 북신은 북극성으로 임금을 뜻한다. 즉 태평스러운 세상의 성군)”과 그 옆에는 논어의 구절인 “만세립극 중성공지(萬歲立極衆星拱之 - 만세토록 북극성에 서시니, 뭇별들이 받들어 모신다)”이 새겨져 있다. 섬바위 맞은편 동암 비탈면에는 검게 변해 잘 보이지 않지만 “이승응(李承膺) 신응우(申應雨) 최ㅇ성(崔ㅇ成) 솔(率) 나유영(羅有英) 최재경(崔載敬) 조세옥(趙世玉) 위각북(爲刻北) 신석십(辰石十) 이대자(二大字) 용서(龍西) 지(志)”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는 “이승응·신응우·최ㅇ성이 나유영·최재경·조세옥을 거느리고 와서 북신석에 12자의 큰 글씨를 새겼으며, 용서가 쓴 것이다”. 용서는 최익현의 문하로 화서학파의 학통을 잇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유기일(柳基一)의 호이다.

북극 한파를 통해 꽁꽁 언 포천천을 건너며 백로주 암각문을 살펴보았다. 세월의 흔적은 누구도 막을 수 없지만, 선현들의 흔적을 통해 역사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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